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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물

건축은 놀이가 될 수 있을까?

by organic-son 2025. 5. 11.

― 통제되지 않는 공간이 만들어내는 창의성과 해방감

“놀이는 계획되지 않는다. 건축도 그래야 한다.”

도시는 점점 ‘규율의 공간’이 되고 있습니다. 정해진 동선, 정해진 기능, 통제된 보행자 흐름, CCTV, 울타리, 경고문… 이런 구조 속에서 인간은 더 이상 ‘이곳에서 마음대로 놀아도 된다’는 신호를 받지 못합니다.

하지만 인간은 본래 자율적 해석과 변형의 존재입니다. 아이들은 건축의 경계를 넘나들며 공간을 새롭게 해석하고 사용합니다. 이 본능적인 공간의 자유는 우리가 '놀이'라고 부르는 창의적 행위로 이어집니다.

이번 글에서는 건축이 어떻게 놀이가 될 수 있는지를 공간 구조, 도시 사례, 설계 철학을 통해 분석합니다.


1. 놀이는 '의도하지 않은 사용'에서 시작된다

놀이는 본래 목적이 없습니다. 자유롭고, 순간적이며, 창의적입니다. 그리고 아이들은 본능적으로 건축의 틈에서 놀이를 찾습니다.

  • 난간을 철봉으로,
  • 벽을 낙서판으로,
  • 공터를 모래사장으로 바꿔버립니다.

그러나 현대의 많은 건축물은 모든 용도를 고정해 두고,, 사용자의 상상력을 차단합니다. 놀 수 있는 공간은 ‘정해진 공간’에서만 허용되고, 그 외의 자유로운 사용은 ‘질서 위반’으로 간주됩니다.

“우리는 언제부터 놀이터 안에서만 놀 수 있게 되었을까?”

건축이 놀이가 되려면, 사용자에게 공간 해석의 주도권을 넘겨야 합니다. 즉, 정해진 방식 대신 자유로운 사용을 유도하는 구조가 되어야 합니다.


자율적 해석의 공간

2. 통제되지 않은 공간이 주는 해방감

자율적 놀이를 유도하는 건축은 일정한 특징이 있습니다:

설계 요소설명

경계 없음 담장, 펜스, 단절된 구조 대신 유기적 연결 공간 제공
의미 없음 고정된 목적 없이 다양한 사용을 허용 (예: 광장, 비계획적 오픈 스페이스)
변형 가능성 사용자의 방식에 따라 재해석 가능한 구조 (계단 = 좌석, 무대, 휴식 공간 등)

이러한 요소는 사용자의 개입을 허용하고, 건축을 ‘완결된 구조’가 아닌 열린 플랫폼으로 전환시킵니다. 사람은 사용하면서 그 공간을 다시 디자인하게 되며, 그것이 바로 ‘놀이’의 시작입니다.

도시는 원래 사람이 ‘살아가는 곳’이자 ‘놀 수 있는 곳’이어야 합니다. 놀지 못하는 도시는, 결국 창의력을 상실한 도시로 변해갑니다.


3. 도시 속 놀 수 있는 틈을 만드는 건축

🇩🇰 슈퍼킬렌 파크 (코펜하겐)

  • 도시공원의 일부를 무경계로 설계
  • 벤치, 자전거 경로, 분수, 미끄럼틀이 자유롭게 혼합됨
  • 시민은 ‘행사장’, ‘광장’, ‘놀이터’로 각기 다르게 사용
  • 각 나라의 문화적 오브제를 혼합하여 공간 자체가 하나의 놀잇감이 됨

🇰🇷 서울 성수동 언더스탠드 애비뉴

  • 컨테이너를 활용한 유연한 공간
  • 장터, 전시, 놀이, 회의 등 시민 주도로 공간을 변형해 사용
  • 관 주도가 아닌 시민 자율성 기반의 건축 운영

🇯🇵 도쿄 아키하바라 고가 아래 공공예술 공간

  • 고가도로 하부를 전시, 그라피티, 팝업시장으로 활용
  • 누구나 개입 가능한 열린 구조 → 시민 문화 실험실로 진화

이들의 공통점은 공간이 목적 없이 비워져 있다는 점, 그리고 그 비움이 창조적 사용으로 채워진다는 점입니다.


4. 진짜 ‘놀이형 건축’의 조건은 무엇인가?

단순히 놀이터가 있는 건축이 아니라, 자율적 해석이 가능한 공간이 필요합니다. 이는 다음의 설계 원칙으로 구체화할 수 있습니다:

  1. 기능을 정하지 않는다
    → 의자, 무대, 계단, 경사로가 겹치는 다기능 구조
  2. 시선을 통제하지 않는다
    → 높이, 깊이, 울타리를 줄이고 흐름과 개방을 늘리기
  3. 공간 해석을 사용자에게 맡긴다
    → 규정과 목적보다, 상상력의 틈을 우선 고려
  4. 비어 있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 아무 기능이 없는 공간이 상상력을 자극함

✅ ‘어떻게 써야 하는가’를 정하지 않는 것, 그것이야말로 가장 창의적인 설계입니다.


놀이형 건축

5. 건축은 ‘예상치 않은 사용’을 허락할 수 있는가?

놀이는 규칙을 깨고, 의미를 전복하며, 예상하지 못한 방식으로 공간을 사용하는 행위입니다.
그리고 좋은 건축은 이런 ‘예상치 못한 상상’을 환영하는 구조여야 합니다.

도시 곳곳에서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놀 수 있도록 허용하는 것은 단순한 편의가 아니라 자유의 표현입니다.

“우리가 놀 수 있다는 것은, 이 도시가 아직 우리를 신뢰한다는 뜻이다.”

놀이는 단순한 유희가 아니라 인간다움의 표현입니다.
건축이 놀이가 되려면, 그 공간은 정해져 있지 않아야 하고, 열려 있어야 하며, 끊임없이 다시 쓰일 수 있어야 합니다.

놀이를 허락하는 공간이야말로, 가장 민주적인 도시 구조입니다.